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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칼럼]신약개발의 출발점 '공유 플랫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3-27 13:28
조회
8411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 중 하나는 개인 취향이다. 모두 똑같은 게 아니라 나에게 꼭 맞는 서비스를 원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맞춤형 서비스에는 막대한 자원이 든다. 그래서 이미 생산된 제품을 다수가 공유하는 '공유경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정보 공유에서 출발해 물질을 공유하고, 데이터와 서비스가 융합해 순환되는 공유시스템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의사결정의 중심축도 생산자에서 수요자로 이동하고 있다. 아직 제도·문화적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게 있지만 공유 플랫폼은 21세기 국가 경쟁력 제고에 필수적일 것이다.

2000년 인류는 인간 게놈지도를 완성했다. 바이오산업의 눈부신 청사진이 제시됐고, 선진 글로벌 제약사들은 자체 보유한 백만 종 이상의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신약개발의 새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한국의 제약기업은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영세했다. 자체적으로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관리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이에 연구자들은 각자의 실험실 냉장고에 있는 화합물을 모아 공동으로 관리, 활용할 방안을 모색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같은 해 한국화학연구원 내에 한국화합물은행이 탄생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2008년 한국화합물은행은 질적 성장의 전환점을 맞았다. 국가 화합물 관리·유통 전담기관으로 지정된 덕분에 양질의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기탁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2000년 8천 종에 불과했던 화합물은 20년이 지난 현재 64만 종으로 크게 늘었다. 약효 데이터도 상당한 규모로 축적했다. 64만 종의 화합물 구조 및 물성 정보뿐만 아니라 화합물을 활용한 650만 건 이상의 약효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데이터 정보 이외에도 화합물 유통 관리 시스템도 관리하고 있다. 실물 화합물의 기탁, 품질관리 및 분양 정보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정보화해 놓은 것이다. 2019년에는 각각 관리하던 화합물 활용 정보와 실물 화합물 정보를 통합해 내부 관리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개선했다. 또 한국화합물은행의 데이터를 해외 공공 데이터와 통합해 사용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점진적으로 수요자 중심의 데이터 플랫폼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대규모의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보유하고 있는 건 드물다. 미국과 일본, 유럽의 경우 대부분 거대 제약사들이 자체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보유하고 있다. 공공 영역에서 연구 재원을 마련해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도 했으나 지속적인 확장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반해 한국화합물은행은 화합물 라이브러리 운영을 통해 논문이나 특허에 공개되지 않은 비공개 연구 데이터까지 확보하고 있다. 해외 공공기관에 비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화합물은행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화합물은행 초창기에는 라이브러리 확보에 급급한 탓에 화합물의 품질이나 질적인 구성에서 적잖은 문제가 있었다. 화합물 활용 과정에서 문제점들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화합물 품질을 개선했다. 초창기 수집된 화합물들에 대한 품질검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데이터도 쓰다 보면 문제점들이 발견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명실상부한 신약개발 데이터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할 때까지 쌓아두기만 하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쓸수록 화합물 라이브러리와 데이터의 활용 가치도 상승한다. 한국화합물은행은 기관이나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신약·바이오 연구를 하는 국내 모든 연구자의 공동자산이다. 최근 한국화합물은행에 접수되는 활용신청서를 검토하면서 대한민국의 바이오 기술의 발전과 역량을 실감하고 있다. COVID-19 위기 상황에서도 발 빠르게 한국화합물은행이 기여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함께 구축하고, 함께 활용하는 신약개발을 위한 화합물과 데이터의 공동 활용 플랫폼인 한국화합물은행의 20주년을 자축한다.

기사 바로가기 ( 출처 : 중도일보 )

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200326010011069